‘꿈의 신도시’. 1989년 노태우 정부가 1기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를 추진하면서 내건 구호였다. 2000년대까진 그게 별로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주거환경이 뛰어나고 집값도 서울 강남을 위협할 만큼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1기신도시는 주택시장 안정화, 경기 활성화, 기반시설 공급 측면에서 성공한 도시개발의 대명사로 통한다. 1988년 18.47%, 1989년 18.82%, 1990년 37.62% 폭등하던 서울 아파트값은 1기신도시가 입주를 시작한 1991년(-4.5%) 이후 안정됐다.(KB국민은행 시세)
주택 보급률도 1990년 63%에서 1기신도시 개발이 끝나는 1997년 82%까지 높아졌다. 대한민국이 아파트 위주 주거환경을 갖추기 시작한 것도 1기 신도시가 계기였다.
집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한 2000년대엔 1기 신도시가 주인공이 됐다. 체계적으로 개발한 신도시는 서울 강남권(강남, 서초, 송파구)과 경쟁할 정도로 집값이 많이 올랐다. 2000년 중반 집값 상승 진앙이었던 이른바 ‘버블세븐’ 7곳 중 서울(강남, 서초, 송파, 양천 목동)을 제외한 2곳이 분당과 평촌이었다.(나머지 한 곳은 ‘용인’) ‘천당 아래 분당’이란 표현은 ‘고공행진’하는 집값에 행복한 신도시 주민의 상징과 같았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이후 1기신도시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사라졌다. 사람들은 2010년대 입주가 본격화한 2기신도시를 주목했다. 분당보다는 판교신도시나 광교신도시가 떴고, 일산보다는 운정신도시의 미분양에 관심이 많았다.
1기 신도시는 준공 20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신(新)’도시가 아니었다. 벌써 녹물이 나오는 단지가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다. 낡고 협소한 주차장 등 불편한 노후 아파트라는 이미지가 사람들 머릿속에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경기연구원이 올 상반기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주민의 83.8%가 거주 아파트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노후화된 주거 환경과 고령화, 가구 분할로 중동, 산본, 평촌은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준공된 지 30년을 지나는 2021년 이후 1기 신도시는 새로운 변신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도권의 양호한 주거지로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특히 1기 신도시가 우리나라 도시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10여년 이후 도래할 2기신도시 노후화의 선례가 된다. 신도시 노후화 정비에 대한 시금석을 장기적 관점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계획도시라는 특성을 고려해 산발적 단지 중심의 정비가 아니라 스마트도시로의 변화 등 도시 전반의 기능 향상 관점에서 새로운 정비 수단 모색해야 한다”며 “1기 신도시에 대한 고민은 지금부터 필요하며, 늦어질수록 사회적 부담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jumpcut@heraldcorp.com